목요일 프랑스 전역에서 임금과 생활비, 공공서비스 문제를 내건 조정된 파업과 시위의 날에 60만 명 이상이 행진과 집회에 참가했다.1,5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노동자를 대표하는 5개 노조가 주최한 이번 행동에는 노조가 노동자와 연금생활자, 청년층의 참여를 촉구한 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합류했으며, 임금 인상과 악화하는 공공서비스 및 높은 물가에 대한 정부 대책 마련 요구가 중심을 이뤘다.1,5
참가 규모를 두고는 집계가 엇갈렸다. 프랑스 내무부는 참가자가 오후 27만 명에서 저녁 60만 명으로 늘어 60만 명을 넘었다고 밝혔고, CGT는 157만 명으로 집계하며 파리(Paris)와 마르세유(Marseille), 보르도(Bordeaux), 릴(Lille)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며 2023년 이후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1,5
이 잠정 집계는 지금까지 최대 집회일로 여겨졌던 10월 17일 토요일 집회 때보다 많았다. 당시 내무부는 55만 명이 참가했다고 밝혔고 노조 집계는 80만 명이었다. CFDT 대표 마릴리즈 레옹(Marylise Léon)은 목요일 오전 시위가 그 이전 수준만 돼도 만족하겠다고 말했다.1
노조들은 정부를 상대로 한 공동 행동을 "다음 단계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CGT 대표 소피 비네(Sophie Binet)는 "이 동원을 멈추게 할 유일한 것은 우리의 요구에 답하는 것"이라는 것이 자신들의 메시지라고 말했고, 파리 중심부 행진 출발 지점에서 기자들에게 시위대가 "동원에서 새로운 단계에 막 진입했다"며 즉각적인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1
특히 노조들은 현재 시간당 12.31유로인 최저임금(Smic)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레옹은 최저임금만이 아니라 임금 전반이 올라야 한다며 "월 100유로의 순증액을 요구한다"고 마릴리즈 레옹은 설명했다. 정부는 공무원의 약 9.89%가 파업에 참가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1
학교와 병원, 대중교통에서 차질이 보고됐고 파리의 에펠탑(Eiffel Tower)과 루브르(Louvre) 박물관 일부 전시실이 문을 닫았다. 노동자들은 정유공장 가동 중단을 요청받았고, 원자력발전소 차질로 프랑스는 목요일 생산량보다 많은 전력을 수입할 것으로 예상됐다. 교육부는 교사 16%가 파업했다고 밝혔고, 노조는 15∼18세가 다니는 고등학교 4곳 중 1곳 이상과 대다수 대학교에서 차질이 빚어졌다고 말했다.1
파리에 어둠이 내린 가운데 세바스티앵 르코르뉘(Sébastien Lecornu) 총리는 다음 월요일 노조 및 사용자단체와 "사회 회의"를 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의가 "구매력과 임금 문제를 둘러싼 의문에 답을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략 비축유에서 디젤 1000만 배럴을 방출해 연료비 부담을 낮추려 했고, 파르쿠르쉬프(Parcoursup) 대학 입학 플랫폼을 개혁해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교체하겠다고 학생들에게 약속하면서도,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의 5%로 낮추기 위해 수백억 유로의 절감이 필요한 만큼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1
로랑 뉘녜즈(Laurent Nuñez) 내무장관은 7만 명의 경찰을 배치하고 폭력 사태 가능성에 "극도로 단호한 대응"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여러 도시에서 충돌이 벌어졌는데, 리옹(Lyon)에서는 론강(Rhône) 위 Gallieni 다리 근처에서 차량에 불이 붙었고 검은 옷을 입은 과격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했으며, 북서부 도시 렌(Rennes)에서는 지역 현감이 주요 노조 행진 앞에 "적대적인 복면 집단"이 모였다고 밝혔고, 보르도에서는 광장을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가스가 사용됐으며, 파리 북부 센생드니(Seine-Saint-Denis)의 고등학교 봉쇄 시위 중 학생이 관련된 흉기 사건으로 10대 1명이 다쳤다.1
이번 소요는 2000개가 넘는 상점이 약탈되고 역사적 건물들이 불에 탄 10월 17일 때만큼 큰 규모는 아니었다. 10월의 가장 큰 학생 시위 중 하나가 폭력적으로 변해 상점들이 파손되고 프랑스 중부 리모주(Limoges) 시청 지붕에서 불길이 치솟았으며,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은 폭력의 책임을 극좌 단체들에 돌렸다. 이번 물결은 9월 고등학교의 여건과 자원을 둘러싸고 시작돼 대학교와 노동자, 고물가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gilets jaunes) 운동의 재점화로 확산됐다.1,5
Unef 학생노조 부대표 알리스 드브리토(Alice De Brito)는 요구가 교육을 넘어 확대됐다고 말했다. "이제는 교육과 고등교육 분야 공공서비스에 [투자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프랑스 전체의 모든 공공서비스에 관한 것이다." 목요일 파리 행진은 노조가 제안한 국민의회(National Assembly)와 엘리제궁(Élysée Palace), 총리 관저 인근의 바스티유 광장(Place de la Bastille)에서 콩코르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까지 구간 대신,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에서 나시옹 광장(Place de la Nation)까지 이어지는 중심 경로가 허용됐다. 노란 조끼 운동은 금요일과 토요일 추가 봉쇄와 시위를 촉구했다.1